月明洞(ウォルミョンドン)の地を初めて買うようになった経緯 운영자| 2016/07/28 |閲覧数 6,317

    1979年~1980年ごろ、鄭明析牧師がソウルの<ナムガジャドン>で、約50人を集めて開拓をしていた頃でした。


    その時、鄭明析牧師の母が<月明洞(ウォルミョンドン)>から電話をかけてきました。

    「元気か?」

    「元気にしています。」

    「これから<ソウルの一番上のお兄さんのいるところ>に引っ越す。

    それで<あなたが建てた月明洞の家>を売って行こうと思う。

    マルゴリ(地名)のファン・プグンさんが買いたいと言っている。35万ウォン払うと言っている。

    しかし、あなたが建てた家だから、あなたに話をしてから売ろうという

    感動があったので電話した。

    この家を売らないと引っ越しの費用がない。

    もう東側の台所の壁も崩れた。」


    お母さんの話を聞いて鄭明析牧師は、

    「ソウルで牧会に失敗したら、私はそこに帰って暮ら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と言いました。


    その家は、鄭明析牧師が<ベトナム戦争>に行ってきて、100年経った土壁の家を壊して、建て直した家でした。


    鄭明析牧師の母は

    「あなたがお金があるなら買いなさい。それで引っ越し費用にするから。

    私はこれ以上お父さんと一緒にここで住めない。

    もう腰が痛くて農作もできない。

    一番上の兄さんが、早く家を売ってソウルに来いと何度も電話してくる。

    あなたがここに来て住みたいなら、あなたが買いなさい。

    3日だけ待って連絡が来なければ、お金の工面ができなくて買えないのだと思って、

    家を売って引っ越す。電話を切りなさい。電話代がかさむ。」

    と電話を切りました。


    その時から鄭明析牧師は、悩み、心配、憂いでした。

    ご飯も食べないで、部屋に入って真実に祈っていたら、午前4時頃電話が鳴りました。


    「こんな時間に誰が電話をしたのだろう?お母さんかな?」と思って、祈りの途中電話を受けました。

    しかし「教会の男性メンバー」でした。


    「牧師さん、何をしていらっしゃいますか?」

    「今、明け方の祈りの最中だ。

    急用だとしても、今は祈りの途中だから、祈りが終わってから話そう。」

    「牧師さん、何か心配ごとでもありますか?」

    「そうだよ。」

    「何ですか?」

    「私が話したところで、あなたが解決してくれることができるか。神様に告げるべきだろう。」

    「牧師さんも心配をしますか?理解できません。何の心配ですか?」

    「私も<人間>だから、この世的な心配がある。

    祈っていたのに、あなたのせいでリズムが崩れた。

    うちのお母さんの電話だと思って受けた。電話切るよ。」

    「牧師さん、私、牧師さんに会いたいです。今、行ってもいいですか?許諾してください。」


    鄭明析牧師が早く返事をしなければ、その人が先生をずっと説得しようとして時間がかかりそうだったので、「分かった。来なさい」と言って電話を切りました。



    御子主はすでに<鄭明析牧師が祈ったことに対する答え>をくださろうとして計画をし、その祈りに答えてくださるために「適切な人」を送ったのに、それも知らずに「教会のメンバーが来る前に早く祈ろう。

    その人が来たら教会の戸を開けてあげなければならなくて、それ以上祈れないから、早くもっと祈ろう」と思って、祈りました。


    御子が計画をし、

    「その男性のメンバー」を通して問題を解決してくださろうとしたのに、それも知らずに

    「母が月明洞の家を売ったらどうしましょう。

    神様がお金を貸してくださるか、この問題を必ず解決してください。

    <月明洞>に「御心」がなければ家を売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けれども。

    3日経って連絡がなければ母は家を売ると言いました。

    どうしましょう。もう夜が明けたから、2日残っています」と言って、

    切羽詰まって祈りました。


    ところが「答え」はありませんでした。

    文句か落胆か、心がふさがる思いでした。

    うっとうしかったです。


    「メンバーたちにお金を借りたらいいだろうか?貧しい人たちだから、誰にお金を借りるだろうか?」と考えました。


    その時の10万ウォンなら、今の200万ウォン以上の大金でした。

    その時35万ウォン必要だったから、今の価値で計算したら、少なくない額でした。


    祈っている途中、さまざまなことを考えましたが、急に心の片隅で「何とかなるだろう」という感動が来て、無邪気な子どものように心配が消えました。


    その時教会のベルが鳴りました。

    鄭明析牧師が戸を開けたら、さっき電話をかけてきたその男性メンバーでした。

    その人は「牧師さん、会えるように許諾してくださって感謝します。ところで何を心配して祈られたのですか?」と尋ねました。


    それで心配していることを話しました。

    その人は鄭明析牧師の話を聞いて「牧師さん、その家、必要ですか?」と言いました。


    鄭明析牧師は「必要だよ。そして私が建てた家だから好きだよ。

    その家を売ったら、帰る故郷の家がなくなるんだ。」と言いました。

    その人はその話を聞いて「牧師さん、私が買ってさし上げましょう!」と言いました。

    「建て直した新しい家だから高いよ。」

    「いくらぐらいしますか?」

    「35万ウォンだ。」

    「くっくっ!!はっはっ!!35万ウォンの家もありますか?もしかして3500万ウォンではありませんか。35万ウォンでは、ソウルでは土地を数坪も買えません。」

    「違うよ。田舎では普通、家1軒が数十万ウォンだよ。」

    「そうですか?それなら早く行って買ってください」と言って、 

    その人はぴかぴかの青色の100万ウォンの小切手4枚と、さらに現金数十万ウォンをくれました。


    「早く行って契約してください!このお金は私がお小遣いとして持ち歩いているものです。

    家に行ってもっと持ってきます。

    牧師さんのお母さんが故郷の家を他の人に売る前に早く行ってみてください。

    私はもう帰ります。牧師さんに会えてうれしいです。」と言いました。


    鄭明析牧師が祈ったので、御子主が人を通して祈りを聞いてくださいました。

    これが「祈りの答え」でした。


    しかし鄭明析牧師は100万ウォンのピカピカの小切手4枚は受取らないで、

    「現金35万ウォンあればいい。そしてあと3万ウォンだけくれ。久しぶりに母に会いに行くから、りんごとすけそうだらを買って行こうと思うので。そして交通費にもするから。」と言って現金38万ウォンだけを受取りました。


    早速着替え、いつも持ち歩いているかばんを持って、顔には「希望の光」が輝いて、

    列車に乗り月明洞に行って、お母さんに会いました。

    鄭明析牧師が母の前にお金を差し出したら、母は驚いて

    「教会が栄えているのか?」と言いました。

    鄭明析牧師は、栄えていると言って、家の値段35万ウォンを渡し、

    りんごとすけそうだらも渡しました。


    「お母さん、この家はこれからは私の家ですか?」と言ったら、母は

    「兄たちはみんなソウルに家があるし、ヨンジャは結婚して家があるし、他の兄弟たちはこの家に帰ってこない。みんな売ってしまえと言った家だ。これからあなたが来て住みなさい。台所側は土で作ったレンガなので、壁が崩れて、手入れ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ころでこの家を買って何をするんだ?」と言いました。


    鄭明析牧師は母に「フェッコルの畑はどうしますか?」と言ったら、

    母は「その土地を誰が買うんだ?そのまま山になるだろう。」と言いました。

    「いつ引っ越しますか?」と言ったら、

    母は「すぐに行くよ。うん、コチュジャンや醤油の入っている甕は持って行かない。置く所もない。一番上のお兄さんがソウルに来なさいとずっと電話をかけてくるから、仕方なく行く。」と言いました。

    そのように対話をしてから挨拶をし、鄭明析牧師はソウルに戻ってきました。


    そのとき<月明洞の家>を他の人に売ったなら、今日<月明洞自然聖殿>を建築できなかったでしょう。

    あの小さいところを出発点にして、神様は聖霊様と御子主と共に<月明洞自然聖殿>を美しく雄大で神秘的に建築するようになさいました。


    鄭明析牧師が神様の<福音>を伝え「伝道」をしたら、神様と御子主は「伝道した人」を通して問題を解決してくださいました。



    - 2015年1月4日鄭明析牧師の主日の御言葉より -

    - Translation : RS3987

    1979년~1980년 즈음, 정명석 목사가 서울 <남가좌동>에서 

    약 50명을 모아 개척할 때였습니다.


    이때 정명석 목사의 어머니가 <월명동>에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어떻게 지내냐?”

    “잘 지내요.”

    “이제 <서울 큰형 있는 곳>으로 이사 간다.

    그래서 <네가 지은 월명동 집>을 팔고 가려고 한다. 

    말거리 황부근 씨가 산다고 했다. 35만 원 준다더라. 

    그런데 네가 지은 집이니, 너에게 이야기라도 하고 팔려고 

    감동되어 전화했다.

    이 집을 팔아야 이사 비용이 나온다. 

    이제 동쪽 부엌 벽도 무너졌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정명석 목사는 

    “저 서울에서 목회 실패하면, 거기 가서 살아야 돼요.” 했습니다.


    그 집은 정명석 목사가 <베트남 전쟁터>에 다녀온 후에

     100년 된 토담집을 다 허물고 새로 지은 집이었습니다. 


    정명석 목사 어머니는 

    “네가 돈이 있으면 사라. 그것으로 이사 비용 대게. 

    나는 더 이상 아버지와 같이 여기서 못 살아.

    이제 허리가 아파서 농사도 못 짓는다. 

    큰형이 빨리 집 팔고 서울로 오라고 수시로 전화한다.

    네가 여기 와서 살 거면, 네가 사.

    3일만 기다리다가 연락 안 오면, 돈이 안 돼서 못 사는 줄 알고 

    집 팔고 떠난다. 전화 끊어. 전화비 많이 나온다.” 

    하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때부터 정명석 목사는 고민, 걱정, 근심이었습니다.

    밥도 먹지 않고 방에 들어가서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새벽 4시경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이 시간에 누가 전화했지? 어머니인가?’ 하고, 

    기도하다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인 중의 어떤 남자’였습니다. 


    “목사님, 뭐하세요?”

    “지금 새벽기도 중이지. 

    급한 일이 있어도, 지금은 기도 중이니 기도 끝내고 이야기하자.” 

    “목사님, 뭐 걱정되는 것 있어요?” 

    “그래.”

    “뭐예요?”

    “내가 말하면, 네가 해결해 줄 수 있겠냐. 하나님께 고해야지.”

    “목사님도 걱정을 해요? 이해가 안 되네요. 무슨 걱정인데요?”

    “나도 <사람>이니 세상 걱정이 있다. 

    기도하는데, 너 때문에 리듬 깨졌어. 

    우리 어머니 전화인 줄 알고 받았어. 전화 끊을게.”

    “목사님, 저 목사님 보고 싶은데, 지금 가도 되나요? 허락해 주세요.”


    정명석 목사가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그를 계속 설득시키느라 긴 시간이 가게 생겨서 “그래, 와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성자 주님은 이미 <정명석 목사가 기도한 것에 대한 답>을 주시려고 

    계획하시고 그 기도를 들어주시기 위해 ‘합당한 사람’을 보내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교인이 오기 전에 빨리 기도해야지. 

    그가 오면 교회 문을 따 줘야 해서 더 기도 못 하니까 빨리 더 해야지.’ 

    하고 기도했습니다. 


    성자 주님께서 계획하시고

    ‘그 남자 교인’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려 하시는데,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가 월명동의 집을 팔면 어쩌지요? 

    하나님이 돈을 꿔 주시든지, 이 문제를 꼭 해결해 주세요.

    <월명동>에 ‘뜻’이 없으면 집을 팔겠지만요. 

    3일 만에 소식 없으면, 어머니가 집을 판다고 했습니다. 

    어쩌지요? 벌써 날이 새서 이틀째예요.” 하며 

    다급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었습니다.

    푸념인지, 낙심인지, 마음이 먹먹하기만 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교인들에게 돈을 빌리면 되려나? 가난한 사람들이니, 

    누구한테 돈을 빌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 10만 원이면, 지금의 200만 원도 넘는 큰돈이었습니다.

    그때 35만 원이 필요했으니,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적지 않은 액수였습니다.


    기도하다가 각종으로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 ‘되겠지.’ 

    하는 감동이 들어 철없는 어린아이같이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교회 벨이 울렸습니다. 

    정명석 목사가 문을 여니 방금 전에 전화했던 그 남자 교인이었습니다.

    그는 “목사님, 만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뭘 걱정하며 

    기도하신 거예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걱정되는 사연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정명석 목사의 말을 듣고 “목사님, 그 집 필요하세요?” 했습니다.


    정명석 목사는 “필요하지. 그리고 내가 지은 집이라서 좋아.

     그 집을 팔면, 돌아갈 고향 집이 없어진다.” 했습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목사님, 제가 사 드릴게요!” 했습니다.

    “얘! 새 집으로 다시 지어서 비싸.”

    “얼마나 해요?”

    “35만 원이야.”

    “킥킥!! 하하!! 35만 원짜리 집도 있어요? 혹시 3500만 원 아니에요?

    35만 원으로는 서울에서는 몇 평도 못 사요.”

    “아니야. 시골에서는 보통 집 한 채에 몇 십 만 원이야.”

    “그럼 어서 가서 사세요.” 하면서, 

    그는 번쩍이는 파란색 100만 원짜리 수표 네 장과 현금 몇 십만 원을 

    더 주었습니다. 


    “어서 가서 계약하세요! 이 돈은 제가 용돈으로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 

    집에 가서 더 가지고 올게요.

    목사님 어머니가 고향 집을 다른 사람에게 팔기 전에 어서 빨리 가 보세요.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목사님 뵈니 기뻐요.” 했습니다. 


    정명석 목사가 기도하니, 성자 주님께서 기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명석 목사는 100만 원짜리 수표 네 장은 받지 않고,

    “현금 35만 원만 줘.. 그리고 3만 원만 더 줘. 오랜만에 어머니 찾아뵈니, 

    가다가 사과와 명태 사 가려고. 그리고 차비도 할게.” 하며, 

    현금 38만 원만 받았습니다. 


    즉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들고, 얼굴에는 ‘희망 빛’이 찬란하여 

    열차를 타고 월명동에 가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정명석 목사가 어머니 앞에 돈을 내놓으니, 어머니는 놀라면서

     “교회가 잘 되냐?” 하셨습니다.

    정명석 목사는 잘된다고 하며 집값 35만 원을 드리고, 

    사과와 명태도 드렸습니다. 


    “어머니, 이 집은 이제 제 집이에요?” 하니, 어머니는 

    “형들은 다 서울에 집이 있고, 영자는 결혼해서 집이 있고,

    다른 형제들은 이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다 팔아 버리라고 한 집이다. 

    이제 네가 와서 살아라. 부엌 쪽은 흙벽돌이라서 벽이 무너져서 손질해야 된다. 

    그런데 이 집은 뭐하러 사냐?” 하셨습니다. 


    정명석 목사는 어머니에게 “회골 땅은 어떻게 하려고 해요?” 하니,

    어머니는 “그 땅을 누가 사 가냐? 그냥 산(山) 되겠지.” 하셨습니다.

    “언제 이사 가세요?” 하니,

    어머니는 “바로 가야지. 장독은 안 가지고 간다. 놓을 데도 없다. 

    큰형이 계속 서울로 오라고 전화하니, 할 수 없이 간다.” 하셨습니다. 

    이렇게 대화한 후 인사하고 정명석 목사는 다시 서울로 왔습니다.


    그때 <월명동 집>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더라면, 

    오늘날 <월명동 자연성전>을 건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작은 곳을 시작점으로 하여 하나님은 성령님과 성자 주님과 함께 

    <월명동 자연성전>을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하게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정명석 목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전도’했더니, 

    하나님과 성자 주님은 ‘전도한 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 2015년 1월 4일 정명석 목사님의 주일말씀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