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仰生活も心の家を建てているのです。
信仰の家が建てられているのです。
生家を建てることも二つのことを考えています。
今まで一年間設計していますが、いまだにできていません。
一つは、生家を鼻くそぐらい小さく建てて、事務室で事務を執ろうかと考えていて、
一つは、始めから生家を大きく建てようと思っています。
しかしどんなに大きく建てても教役者も入れません。
どうせ入れないのなら、むやみに悩む必要があるのかと考えています。
むしろ事務室の建物に3千人入れるスペースがあります。
だからむしろ生家はただかわいらしく小さく建てようかとも考えています。
こうしていては家も建てられないはめになります。
建築している人はこう言います。
「そのようにあれこれ考えていると家を建てられません。
家は無条件、建ててみ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れで気に入らなければ、再び叩き壊すのです。」と言います。
暮らしているうちに飽きたら、また違うように建てればいいのであって、
鄭明析牧師のように考える必要はないのです。
それで、鄭明析牧師を海外に送り出している間に家を建てておいて、
見せてく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うこともあります。
しかし、結局は、そのようにはいい加減にはしません。
鄭明析牧師は、ほぼ完璧な段階で仕事をします。
自分で考えた時、最高で完璧だという時に安心します。
ただするのでは駄目です。
1998年3月14日 鄭明析牧師の明け方の御言葉より
신앙 생활도 마음의 집을 지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집들이 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생가 짓는 것도 두 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1년 동안 설계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안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는 코딱지 만하게 작게 짓고 사무실에서 사무 볼까 생각하고 있고,
하나는 아예 크게 지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크게 지어도 교역자도 못 들어옵니다.
어차피 못 들어오는데 공연히 심란을 떨 필요가 있는가 생각중입니다.
어차피 사무실 건물에 3000명 들어가는 공간이 있는데요.
그래서 차라리 그냥 예쁘게 작게 지을 까도 생각중입니다.
이러다가 집도 못 짓게 생겼습니다.
건축하는 사람이 그럽니다.
“그러다가는 집을 못 짓습니다. 집은 무조건 짓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맘에 안 들면 다시 때려부수는 것입니다” 합니다.
살다가 지루하면 다르게 짓는 것이지, 나같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해외로 보냈다가 집 지어놓고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얼렁뚱땅으로는 안 합니다.
나는 거의 완벽한 단계에서 일을 합니다.
내가 생각할 때 최고로 완벽하다고 할 때 마음이 놓입니다.
그냥 해서는 안됩니다.
1998년 3월 14일 아침말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