カヌンコルに、母に祈ってもらった柿の木の下に行ってみてください。
そこで祈る姿の石が出てきました。
しかし人々はそれを捨てました。
そこの道を切り開いて掘り出しましたが、私は石について関心があったので
その石を捨てずに柿の木の下に置いて、
私も知らないうちに聖霊に感動を受け、持って来て見ると私が祈る姿でした。
「どうしたらこんな貴いものがあるだろうか?」と言ってすぐに祈りました。
神様がくださったものですかと聞いたら、そう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
人が悟る時、そのように良いです。
そこで終わると思っていましたがまだありました。
一度は柿の木を切ろうとしていました。
枝がねじれて入り込んでいたら、一つの枝は切るものなので切ろうとしたら、「なぜ切ろうとするのか?」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ねじれているから切ろうとしたと言うと、それ以上答えがありませんでした。
それで考えました。
「なぜ神様はこれを切るなとおっしゃるのか?
必ず木の手入れをする時は、ねじれたところを切るのに。
それならば今までねじれた枝を切ったことはみんな間違っていたのか?」
と、そこに座って祈ったところ「これが作品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だから、祈る人は得るということです。
ねじれて入り込んでいるものが作品ということです。
「あなたの母があなたを抱き締めて祈ることを作品として作った」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ああ、神様がこのようなことまで管理なさるのだな」ともっと深く悟りました。
その柿の木を切ったら大変なことになります。
切ると作品を捨てることになります。
神様の作品を私は大きく見ます。
のこぎりで切ろうとしていたので危うく切ってしまうところでした。
祈らなかったなら切ってしまうところでした。
全てのことにはみんなこのように意味があり、御心があり、神様の御働きがあります。
1998年6月22日の御言葉より
가는 골에 어머니께 기도 받았던 감나무 아래 가보십시오.
거기서 기도하는 모습의 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버렸습니다.
거기 길을 내다가 파냈는데 나는 돌에 대해서 관심을 있기에
그 돌을 안 버리고 감나무 아래에 놓았는데,
나도 모르게 성령에 감동되어 갖다놓고 보니까 내가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귀한 것이 있느냐?’하면서 바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깨달을 때 그렇게 좋습니다.
거기서 끝난 줄 알았는데 더 있었습니다.
한번은 감나무를 베려고 했었습니다.
가지가 꼬여 들어가면 하나는 베는 것이기에 베려고 했더니 “왜 베려고 하느냐?”하셨습니다.
꼬여서 베려고 한다고 하니까 더 이상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것을 베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
반드시 나무 손질할 때는 꼬인 것을 베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꼬인 가지 벤 것은 다 잘못한 것인가?’
하며 거기 앉아 기도했더니 “이것이 작품이다”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받는 것입니다.
꼬여 들어간 것이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네 엄마가 너를 껴안고 기도한 것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하셨습니다.
‘야, 하나님이 이런 것까지 관리하시는 구나’라고 더 깊게 깨달았습니다.
그 감나무를 베면 큰일납니다.
베면 작품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을 나는 크게 봅니다.
톱갖고 베려고 갔기에 하마터면 벨 뻔했습니다.
기도를 안했다면 벨 뻔했습니다.
모든 것에는 다 이렇게 의미가 있고, 뜻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1998년 6월 22일 말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