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年頃、月明洞で祈っていたとき、神様もイエス様も
「月明洞に場所を定めて、世界歴史を広げよう」とおっしゃって、感動を与え、悟らせてくださいました。
その言葉を聞いて「何を見て月明洞に聖殿を作り、世界歴史を広げるとおっしゃるのだろう」と思いました。
また「私が足りないし、田舎者だから、見た目どおりに、器どおりにこのような村で歴史を広げるようだ」
このようにまで考えました。
<その時の現実>だけを見たのです。
<未来>を見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その時は月明洞を開発して、新しく作り、変化させる考えはまったくできませんでした。
ただ「神様とイエス様がやらせてくだされば、ありがたく思って、御心どおりにします」と言いました。
神様とイエス様がおっしゃるとき、私は<現実>だけを見て、あまり希望がありませんでした。
「月明洞の環境」を見ても希望がなかったし、「私自身」を見ても希望がありませんでした。
水も足りなくて村に泉が一つしかなかったし、
また小川があることはありましたが、かえるが遊ぶぐらいの細い小川だったし、
また前山と裏山がくっついていて、足も伸ばせないほど狭いし、
山はあるけれども、木がない、索漠とした山だったし、道はあぜ道だったし、
私の土地と言っても家の200坪しかなかったし、その家の土地も実際親のものだったし、また環境を見てもいい景色がなくて何も見るところがなかったし、
千のうちの一つも整っているものがありませんでした。
ここで私が暮らしてみたけれども、あの時はため息ばかりが出る環境でした。
その後、1978年に神様とイエス様がソウルに行って御言葉を伝えなさいとおっしゃったので、
ソウルで御言葉を伝えて、伝道をし始めました。
最初は10~20人くらいが集まりました。
そうして、もっと伝道して、ソウルで小さい教会を作り、従う人が50人くらいになりました。
その時、親が故郷(ふるさと)の家を売って引っ越すという連絡をしてきました。
しかし、神様とイエス様が月明洞に場所を定めて世界の歴史を広げるとおっしゃったので、
家を売ってはいけないという感動がありました。
それでベトナム戦争から帰ってきて藁葺き家を壊して土の煉瓦で建て直した
トタン屋根の家があったその場所を35万ウォン払って、私たちのものとして買いました。
それから、土地を100坪、200坪、1000坪・・・少しずつ買いました。
山も買いました。
このようにして月明洞が少しずつ広くなりました。
6~7年間土地を買い、地面をならし、そこでバレーボールもしました。
神様と聖霊様と御子は摂理歴史で「新しいこと」を行ない始めました。
泉ももっと深く掘り、後では地下水も開発しました。
前山も買い、裏山も買い、隣の山も買いました。
そして、石を積み上げ、はげ山に木も植え、育てました。
結局最初より、よくなりました。
しかし、その時もメンバーたちの中に
「こんな山奥で何をするのか。いくら作っても山奥なのに・・・お金がかかるばっかりだ」と、こそこそ言う人がいました。
彼らは一緒に働くこともしませんでした。
<未来>を見ることはできずに<現実>だけを見ていて希望がないから、摂理史を出て行きました。
しかし、私はその時から<未来>を見て、希望が湧きました。
そうしていて、神様が私に「前山」をどのように積み上げるべきか構想を見せてくださり、
10年間岩の造景をして<野心作>を完成し、前山を完成しました。
池も作ってそこに東屋(あずまや)も建てて、石も積み上げました。
前山と裏山にある木々やその地域の松の木も、小さすぎて希望がありませんでした。
しかし<将来>を見て、希望で育てました。
結局、今は一尋(ひろ)もある松の木になり、密林のようになりました。
結局、今日(こんにち)の現実をつくりました。
運動場、芝生、前山、裏山が、十万の群衆が集まることのできる巨大な自然聖殿になりました。
国内で、世界で、一番大きい自然聖殿です。
聖殿のこの果てからあの果てまで歩くためには、1時間もかかります。
月明洞を全部作ったので、ここに世界各国からおびただしい人々が群がって来はじめました。
<未来>を見て神様と聖霊様と御子の御心どおりに作った月明洞は、
結局「新しい歴史の神様の聖なる聖地」になりました。
みんな、このように<未来>を見て、希望をもって熱心に行ない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
そうすると「肉」も「霊」も神になって、「肉」は地上を治めて甲斐に満ちて生きるようになり、
「霊」は<神様と御子の愛の対象>になって、天国で永遠に享受して生きるようになります。
2014年2月16日 主日御言葉の中から
1970년 경 월명동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도 예수님도
“월명동에 자리를 잡고 세계 역사를 펴자.” 하며, 감동을 주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무엇을 보고 월명동에 성전을 만들고 세계 역사를 펴신다는 거지?’
생각했습니다.
또 ‘내가 부족하고 촌사람이니까 생긴 대로, 그릇대로 이런 촌에서 역사를 하시나 보다.’
이렇게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때 현실>만 본 것입니다.
<미래>를 못 봤습니다.
그때는 월명동을 개발하여 새롭게 만들고 변화시킬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하나님과 예수님이 시키시면 감사하게 여기고 뜻대로 하겠습니다.” 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나는 <현실>만 보고 별 희망이 없었습니다.
‘월명동 환경’을 봐도 희망이 없었고, ‘나 자신’을 봐도 희망이 없었습니다.
물도 부족하여 동네 샘 하나밖에 없지,
또 개울이 있기는 하지만 개구리나 노는 실 가닥 같은 개울이지,
또 앞산과 뒷산이 붙어 있어 발도 못 뻗을 정도로 좁지,
산은 있는데 나무가 없는 삭막한 산이지, 길은 논두렁길이지,
내 땅이라고는 집터 200평밖에 없지, 그 집터도 실상 부모님의 것이지,
또 환경을 보면 경치가 없어서 아무것도 볼 것이 없지,
1000가지 중의 한 가지도 갖춘 것이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내가 살아 봤지만, 그때는 한숨만 쉬던 환경이었습니다.
그 후, 1978년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서울로 가서 말씀 전하라 하셔서,
서울에서 말씀을 전하고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10~20명 정도 모였습니다.
그러다 더 전도하여 서울에서 작은 교회를 만들었고, 따르는 사람이 50명쯤 됐습니다.
그때 부모님이 고향 집을 팔고 이사 가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이 월명동에 자리 잡고 세계 역사를 펴신다고 했으니
집을 팔면 안 된다는 감동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전에 다녀온 후 초가집을 부수고 흙벽돌로 다시 만든
함석집이 있는 그 터를 35만 원을 주고 우리 것으로 샀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땅들을 100평, 200평, 1000평... 조금씩 샀습니다.
산도 샀습니다.
이렇게 해서 월명동이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6~7년 동안 땅을 사고, 터도 닦고, 거기서 배구도 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섭리역사에 ‘새 일’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샘도 더 깊이 파고, 나중에는 지하수도 개발했습니다.
앞산도 사고, 뒷산도 사고, 옆 산도 샀습니다.
그리고 돌을 쌓고, 벌거숭이 같던 산에 나무도 심고 가꾸었습니다.
결국 처음보다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교인들 중에 수군거리면서
“이런 산골짜기에서 뭐해? 아무리 만들어도 산골짜기인데... 돈만 들어가지.” 했습니다.
그들은 같이 일도 안 했습니다.
<미래>를 못 보고 <현실>만 보다가, 희망이 없으니 섭리사를 나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미래>를 보면서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앞산’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구상을 보여 주셨고,
10년 동안 돌 조경을 쌓아 <야심작>을 완성하고 앞산을 완성했습니다.
호수도 만들어 거기에 정자도 세우고, 돌도 쌓았습니다.
앞산과 뒷산에 있는 나무들과 그 지역의 소나무들도 너무 작아서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앞날>을 보고 희망으로 길렀습니다.
결국 지금은 한 아름 되는 소나무가 되었고, 밀림같이 되었습니다.
결국 오늘의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운동장, 잔디밭, 앞산, 뒷산 모두 10만 군중이 모일 수 있는 거대한 자연성전이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세계에서 제일 큰 자연성전입니다.
성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가려면 1시간씩 걸립니다.
월명동을 다 만드니, 이곳에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미래>를 보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대로 만든 월명동은,
결국 ‘새 역사 하나님의 거룩한 성지’가 되었습니다.
모두 이와 같이 <미래>를 보고,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도 ‘영’도 신이 되어 ‘육’은 지상을 다스리면서 보람차게 살게 되고,
‘영’은 <하나님과 성자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서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며 살게 됩니다.
2014년 2월 16일 주일말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