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は<野心作>を何回も繰り返して積み上げて、「神様の構想に従って石を積み上げる方法」を学んだ。
毎瞬間最善を尽くしたので、「神様の次元の構想」どおりに石を積み上げることができたのだ。
御子が私に
「石をしっかり積み上げても、5回は崩れ、6回目には崩れない」と先に話されたなら、
5回目までは形式的に石を積み上げ、6回目だけきちんと積み上げただろう。
そうしたら、今日(こんにち)のように美しく神秘的で雄大な<御座の大傑作>ができあがらなかっただろう。
最善を尽くして繰り返しつつ、①学び、②次元を上げ、③御心を成すのだ。
御子をいくら愛しても、先に答えをくださらない。
答えを先に分かったら、答えばかり探していくからだ。そのようにしたら「過程の中」で得るものがないからだ。
<月明洞の野心作>を積み上げるとき、「4回」も最善を尽くしたけれども「4回」全部崩れたとき、
「何かの事情があるだろう」と思った。
「御子を愛するから、必ずこれをしてさし上げよう」という心が燃えたし、
また、「ついて来る人たちと一緒に貴重に使おう」と希望が燃えた。
それで、石が5回崩れても心がくじけず、「またやろう」という心の感動が来た。
「これしきの、言葉も話せない石が崩れたからといって、途中でこのままやめるだろうか」と思った。
2014年 11月 12日 明け方の御言葉より
나는 <야심작>을 여러 번 반복해서 쌓으면서, ‘하나님의 구상에 따라 돌 쌓는 법’을 배웠다.
매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하나님 차원의 구상’대로 돌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성자 주님이 내게
“돌을 잘 쌓아도 다섯 번은 무너지고, 여섯 번째에는 안 무너진다.” 하고 미리 말씀하셨다면,
다섯 번째까지는 형식적으로 돌을 쌓고, 여섯 번째에만 잘 쌓았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같이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백보좌 대걸작>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여 반복하면서 ① 배우고, ② 차원을 높이고, ③ 뜻을 이루는 것이다.
성자 주님을 아무리 사랑해도 미리 답을 안 주신다.
답을 미리 알면, 답만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정 중’에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월명동 야심작>을 쌓을 때 ‘네 번’이나 최선을 다했는데도 ‘네 번’ 다 무너졌을 때,
‘무슨 사연이 있겠지?’ 했다.
‘성자 주님을 사랑하니, 꼭 이것을 해 드려야지.’ 하는 마음이 불탔고,
또한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귀히 써야지.’ 하고 희망이 불탔다.
그래서 돌이 다섯 번 무너졌어도 마음이 꺾이지 않고 ‘다시 또 해야지.’ 하는 마음의 감동이 왔다.
‘이까짓 말 못하는 돌이 넘어졌다고 그냥 하다 말랴.’ 했다.
2014년 11월 11일 새벽말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