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分が行なったことをもって、永遠に自分が得て享受するようになります。
だから2段、3段、4段ずつ<次元>をだんだんと上げなければなりません。
鄭明析牧師が2015年自然聖殿を開発したところとして、湖の上の滝があります。
鄭明析牧師は、もともとこの<滝>を前山の一番上から流れるようにしようと思っていましたが、条件上そのようにできなくて、少し小さく作りました。
しかしこの滝は小さいけれども「大きい作品」になりました。
なぜでしょうか?
<滝自体>は小さいけれども、その下の「受け皿の役割」をする<湖>と調和を成すので、大きい作品です。
上に<滝>ができたので、もう<湖>も「静かな湖」ではなく、「生きている湖」になりました!
このように<滝>と<湖>全体が調和を成しているように一緒に交わって共にしてこそ美しいです。
<雄大さ>の中に<細やかなもの>が入っていてこそ「よい作品」です。
鄭明析牧師が自然聖殿を開発する時、最高に心血を傾けた<月明洞の野心作>は、<上>は傾斜が急で大きい石を縦にして、尖った形で立てました。
しかし、<中間から下の方>までは石を横にして、平らにして、座りやすく作ったので、楽に座って讃美もし、御言葉も聞き、祈りもします。
だから<野心作>は「自然聖殿で一番険しい所」でもあり、「自然聖殿で一番楽な所」でもあります。
雄大でもあり、楽で接近もしやすいです。
指導者たちは「雄大」であるばかりでは怖いです。
接近しやすくなければなりません。
一番下の深い段階、低い段階にまで降りて行って、命たちを顧み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このように指導者は深く↓高く↑なければなりません。
指導者は「民たち」と近く接してこそ、大きく光を放つことができます。
雄大でも近く接近できなければ、ちゃんと指導す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
- 2016年1月3日鄭明析牧師の主日の御言葉より -
자기가 행한 것을 가지고,
영원히 자기가 얻고 누리게 됩니다.
그러니 2단, 3단, 4단씩 <차원>을 점점 높여야 합니다.
정명석 목사가 2015년 자연성전에 개발한 곳으로
연못 위 폭포수가 있습니다.
정명석 목사는 원래 이 <폭포수>를 앞산 맨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게 하려고 했으나,
여건상 그렇게 하지 못하고, 조금 작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폭포수는 작지만 ‘큰 작품’이 되었습니다.
<폭포수 자체>는 작지만, 그 밑의 ‘수반 역할’을 하는
<호수>와 어울리니 큰 작품입니다.
위에 <폭포수>가 생기니, 이제 <호수>도
‘고요한 호수’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호수’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폭포수>와 <호수> 전체가 어울려졌듯이
같이 어울리고 함께해야 아름답습니다.
<웅장한 것> 속에 <아기자기한 것>이 들어 있어야
‘좋은 작품’입니다
정명석 목사가 자연성전을 개발할 때 최고 심혈을 기울인
<월명동 야심작>은 <위>에는 경사가 험하고
큰 돌을 세워서 뾰족하게 쌓았습니다.
그러나 <중간부터 아래>까지는 돌을 눕혀서 반반하게
쌓아 앉기 좋게 만들어 편안히 앉아서 찬양도 하고,
말씀도 듣고, 기도도 합니다.
그래서 <야심작>은 ‘자연성전에서 제일 험한 곳’이자
‘자연성전에서 제일 편한 곳’입니다.
웅장하기도 하고, 편안하게 접근성이 좋기도 합니다.
지도자들도 ‘웅장’하기만 하면 무섭습니다.
‘접근성’이 좋아야 합니다.
가장 아래 깊은 단계, 낮은 단계까지 내려가서
생명을 살펴야 합니다.
이렇듯 지도자는 깊고↓ 높아야↑ 합니다.
지도자는 ‘백성들’과 가까이 접해야
크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웅장해도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면,
제대로 지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