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동 자연 성전, 야심작 앞에는 허리까지 오는 돌이 있는데 너무 아까워서
제일 처음에는 첫돌이 많이 보이라고 많이 올려 쌓았습니다
나중에 넘어지고, 그 밑에는 더 묻히고 그다음에 더 묻혔습니다.
지금은 맨 밑돌은 묻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한 뼘도 안 되고 앉을 장소도 없습니다.
그전에는 다 앉을 장소가 있었는데 긴 돌이 허리까지 묻혀서 아까웠습니다.
그래도 그 턱을 따라서 돌 조경을 쌓아 올라갔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자기 행한 것.’ 묻어 놓아도 괜찮습니다.
위의 것 보고 빛나면, 밑에도 빛납니다.
오히려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 행한 것을 잘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 묻힌 돌이나 똑같습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묻혀서 보이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아, 이것을 보여줄 수 없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포크레인으로 파낼 수도 없습니다.
그때는 이야기하면 믿어 줍니다
‘이 위가 튼튼한 것은 밑의 돌을 주초로 아주 완벽히 박아 버렸다.
어마어마하게 큰 바윗덩이 같은 돌을 밑에다 박아 버린 정도이다.’
라고 말해 주면 됩니다.
밑에 묻혀 버린 것이 아깝지만
이처럼 묻힌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묻혀 있는 돌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도 빛이 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주 공력 있게 행해야 합니다.
- 2020년 9월 6일 정명석 목사님의 주일말씀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