ここは鄭明析牧師が昔祈っていたチョンドックルです。チョンドックルとは、大人たちに尋ねたところ、金を千両も掘って天の徳を見たと言って「チョンドックル(天徳谷)」と言ったそうです。
ここで、鄭明析牧師は皆が生まれる前の昔からお祈りをしました。
ここで、あの有名な詩「青葡萄が熟していく私の故郷」を書きました。ここに来て書いたのではなく、サンド洞(上島洞)にいるときに昔を考えながら、霊的な次元に入って、ここで過去にあったことを思いながら書いたのです。
洞窟から出た鄭明析牧師の姿は、格好の良くない姿だったけれど、それでも洞窟から出てからは世の中の心配をすべてして生きました。彼らの将来を考えるとそうでした。
そのときの詩のようにないのではなく、世の中の心配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立場だったのです。なぜなら、神様の立場で見るとき、世の中の人たちがとてもかわいそうでした。食べられないことが問題ではなく、着られないことが問題ではなく、寝るところがないのが問題ではなく、肉体が良く食べ、良く過ごし、良く生きても、彼らの霊魂が将来、滅亡に行くことを考えると、とてもかわいそうでした。
私はその当時、食べられず、着られず、寝るところもなかったけれど、死んでもあの天の国に行ける方法を発見していました。
이곳은 옛날에 기도하던 천덕굴입니다.
천덕굴이란, 어른들에게 물어보니
금을 천냥이나 캐서 하늘의 덕을 봤다고 해서 천덕굴이라고 했답니다.
이곳에서 선생님은 여러분이 나기 전의 옛날부터 기도를 했습니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시 “청포도 익어 가는 내 고향”을 썼습니다.
여기에 와서 쓴 것이 아니라, 상도동 있으면서 옛날을 생각하면서,
연상하면서 영적인 차원에 들어가서 이곳에서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쓴 것입니다.
굴에서 나온 내 꼴은 볼품없는 꼴이지만 그래도 굴에서 나와서는 세상 걱정을 다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의 앞날을 생각 때 그랬습니다.
그 때의 시처럼 아닌 것이 아니라 세상 걱정을 해야될 입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세상 사람들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못 먹어서 문제가 아니라, 못 입어서 문제가 아니라, 잘 곳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 잘 먹고, 잘 지내고, 잘 살아도 그들의 영혼이 앞날에
멸망으로 갈 것을 생각할 때는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나는 그 당시 못 먹고, 못 입고, 잘 곳이 없었지만,
죽어도 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여건을 발견했었습니다.
- 1998년 11월 24일 아침말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