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プ山にある岩の造景の道の上に置いた岩があるけれど、おかしな顔が見えます。
それも、見える人には見えるけど、見えない人にはみえないのです。
やっと、今見える人もいます。
そこを見ると何か作品が見えるはずです。
まだ、作品が見えない人は手をあげてみてください。
だから、分からない人は分からないのです。
その石がイエス様の顔に見えますか?
その石は、ただ割れた石を持ってきておいたのに、そのように見えるのです。
ここで生活し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それを見れない人もいるのです。
それは大きな作品だけど。
まだ、見れない人がいます。
このように具体的に教えてあげないと見えないのです。
鄭明析牧師がその石の話をしたのは、けっこう前の話です。
聞いてもみんなはただ、“そこになにかあるみたいだな”といって終わるのです。
分かっている人が教えてあげてください。
御言葉だけ聞くのではなく、そういうことも知らないといけません。
顎まで正確に見えます。
顎の部分がもっと格好いいです。
目も見えるし、頭には黒い線も入っているし、顎もあって、顔は白いです。
まだ、見れない人がいます。
鄭明析牧師がそれについて話してから、ほとんど2年になろうとしているけど、知らない人は知らないのです。
もう、それ以上は教えることもありません。
鄭明析牧師が何かを話したら終わったあとに、それがどういうことなのか確認して行かないといけないのに、自分が思ったまま分かってそのまま帰ってしまいます。
イエス様の顔の岩を見て“この顔が誰でも、自分の顔のようだと
自信を持って言うなら、自分の顔だと言いなさい”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しかし、誰にも似てないし、イエス様に一番似ているのです。
だから、イエス様の顔だと言ったのです。
その人に似てもないのに、ひたすらその人だと言ってはいけません。
鄭明析牧師が以前、青石を抜き出す作業をしました。
その場所には青石ではなく一般石があったし、割れたわけでもないし、
抜くのが困難な石だったけど、不思議と抜きたくてその石を抜いたのです。
不思議と抜きたかったのです。
そのようにして、抜いた後もそこに入れるいい石が非常に多かったのです。
しかし、不思議に“あそこにある形の悪いあの石を持ってきなさい”と言いました。
鄭明析牧師に神様がそのようにおっしゃったのです。
その時は、いい石がたくさん庭にありました。
あの石は、ただ見ても大きくもないし、格好も悪いし、本当にただでこぼこしているだけでした。
だから、“あの石をあげてみて”と言うと、“この石ですか?どうせならもっといいのにしましょう”と言いました。
“あなたはなんでそんなに言葉が多いのか。はやく上げなさい”と言いました。
それで、積んでおいたけど、立てるときはあのように立てることもできたし、
違う形で立てることもできたけど、ちょうどあのように立てたのです。
おいてからも、鄭明析牧師も最初は分かりませんでした。
以前、臨時の事務室があったときだったけれど、そこに上っていってアプ山を見たらあの顔が見えました。
“わあ、あれ誰がいつの間に彫刻したんだろう”と言いながら走っていって見ました。
しかし、あまり近く行くと見えませんでした。
だから、おかしいなと言いながら再び帰ってきて、遠くで見たらはっきりしていました。
あの石はここで見るとわからないけど、大きい石です。
その時、“ああ、私はまた悟った。あの石をあのようにつくるために神様がどれだけ割ったのだろう”と思いました。
あっち、こっちを割ったりしたのです。
鉱山でダイナマイトで割ったはずです。
そのときから、顔が現れたでしょう。
しかし、鉱山から持ってくるときは鄭明析牧師たちも分からなかったのです。
鄭明析牧師がその時分かっていたら、1000万ウォン払っても買ってきたはずです。
石を持ってくるとき、虎皮石(縞模様の石)はいつも四角い石だけを持ってきます。
しかし、その間に挟まってついてきたのです。
挟まってついてきたとき、大きい石の中で割れそうでイエス様がどれだけどきどきしたでしょうか。
自分の顔だから。
だから、神様は神様です。
ちょっと間違っても割れたはずです。
石を見たら、顎の部分が少し割れたようです。
だから、もっと顎らしくなったような気がします。
イエス様は霊人体だから、手がないからもっと整えたくてもできないのです。
整える時も、自然にやらないといけないけれど、金槌でやってはいけません。
それで、この石とあの石がぶつかってちょうど今の形になったとき鄭明析牧師がそこにおいたのです。
鄭明析牧師を通してあそこに置くようになさったのです。
それは、鄭明析牧師が上手くやるから。
そのようにしながらも、“私の顔に似ているのが一つある。それは気をつけないといけない。一つ探してみなさい”と言いません。
それがこわいのです。
だから、一生たっても分からないのです。
―1998年7月27日明け方の御言葉より
앞산 돌조경 길 위에 놓은 바위가 있는데, 이상한 얼굴이 보입니다.
저것도 보는 사람은 보지만, 못 보는 사람은 못 봅니다.
이제서야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기를 보면 무언가 작품이 보일 것입니다.
아직도 작품이 안 보인다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 돌이 예수님의 얼굴로 보입니까?
그 돌은 그냥 깨진 돌을 갖다놓은 것인데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여기에 살면서도 그것을 못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큰 작품인데요.
아직도 못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어야 봅니다.
내가 그 돌 얘기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들어도 애들은 그냥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보다’하고 맙니다.
아는 사람이 가르쳐 주십시오.
말씀만 들을 것이 아니라, 그런 것도 알아야 합니다.
턱까지 정확하게 보입니다.
턱 부분이 더 멋있습니다.
눈도 보이고, 머리에 검은 줄도 가고 턱이 있고, 얼굴은 하얗습니다.
아직도 못 본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얘기한 지가 거의 2년이 되었는데도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가르쳐 줄 것도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얘기하면 끝난 다음에 아는 사람에게 그것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가야 하는데,
자기가 생각한대로 알고서 그냥 갑니다.
예수님 얼굴 바위를 보고 “이 얼굴이 아무든지 자기 얼굴 같다고
자신한다면 자기 얼굴이라고 하라”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닮은 사람이 없고, 예수님이 제일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얼굴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을 닮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그 사람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내가 전에 청석 빼내는 작업을 하였었습니다.
그 곳에는 청석이 아니고 일반 돌이 있었고, 안 깨졌었는데도,
빼기 곤란한 돌인데도, 이상하니 빼고 싶어서 돌을 뺐습니다.
이상하니 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빼고 난 다음에도 거기에 끼울 좋은 돌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니 “저기 두루뭉생이 같은 저 돌을 가져와라” 하였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그러신 것입니다.
그 때는 좋은 돌이 여유 있게 마당에 많았습니다.
저 돌은 그냥 봐서는 규모도 없고, 멋도 없고, 그냥 두루뭉생이같았습니다.
그래서 “저 돌 올려보내”하니 “이 돌이요? 이왕이면 좋은 놈으로 하지요?”하였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말이 많느냐? 빨리 올려라”하였습니다.
그래서 올려다 놓았는데, 꽃을 때도 저렇게 꼽을 수도 있고,
다르게 꼽을 수도 있었는데, 딱 저렇게 놓았습니다.
놓고서도 나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전에 임시 사무실이 있을 때였는데 거기로 올라가서 앞산을 보았는데 저 얼굴이 보였습니다.
“야, 저것, 누가 어느 새 저렇게 조각을 떴지”하면서 뛰어가서 봤습니다.
그러나 너무 바짝 가도 안보였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하면서 다시 돌아왔는데 멀리서 보니 정확했습니다.
저 돌은 여기서 보니 그렇지, 큰돌입니다.
그 때 ‘아하, 나는 또 깨달았다. 저 돌을 저렇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깨트렸을까?’했습니다.
요리 조리 깨트리고 한 것입니다.
광산에서 다이나마니트로 깨트렸을 것입니다.
그 때부터 얼굴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광산에서 가져올 때는 우리도 몰랐습니다.
내가 그 때에 알았으면 1000만원 주고서도 사왔을 것입니다.
우리는 돌을 가져올 때 호피석은 항상 네모진 돌만 가져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달려온 것입니다.
달려올 때 큰 돌 속에서 깨질까봐 예수님께서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겠습니까?
자기 얼굴이니까요.
그러니까 신은 신이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잘못했어도 깨졌을 것입니다.
돌을 불 때 턱 부분이 조금 깨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턱이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영인체이기에 손이 없어서 더 다듬고 싶어도 못 깨트리는 것입니다.
다듬을 때도 자연스럽게 깨져야지 망치로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이 돌과 저 돌과 부딪치면서 딱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때, 내가 저기에 갖다놓은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그곳에 놓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잘하니까요.
그렇게 하면서도 “내 얼굴 닮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조심해야 한다. 하나 찾아봐라”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일생이 가도록 모르는 것입니다.
- 1998년 7월 27일 아침말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