カンナム山の木をを見てください。
ここから見る時は指ほどですが、近くに行って見るととても大きいです。
だから近くに行って見なさいというのです。
それから山上に木がない所があります。
そこは鄭明析牧師が昔、山で祈って来ると、母が来て
「お父さんが柴刈りをして来なかったと大騒ぎになっている」とおっしゃいました。
日が暮れ始めていましたが、急いで一仕事だけでもして、山に行って祈らなくてはいけないと
登って行き、鎌で柴刈りをして背負ってきて、山に入っていきました。
そしてその翌年の春に母に再び会いましたが、その木を使わずそのままにしていました。
なぜなら木が大き過ぎて、使えずにいたのです。
フェコッル側に力持ちが一人住んでいました。
その人は大きい背負子を背負って行き来していました。
それは後ろに倒れる為、背負うのが難しいです。
その人を見て皆がたくましいと言うと、
「そうではない。この近くに私よりもっと大きい怪力が住んでいる。
あの山の木を切っていくのに斧ではなく、鎌で全部切って行った人がいるのだ。」と言いました。
その時、私は無意識のうちにしたのです。
その場所はほかの人が柴刈りをしに行かない所なので、つまり鄭明析牧師がしたことでした。
行って見ると、一抱えの木を鎌で切っていました。
それで今もあの場所に木がないのです。
神様の力が臨んでしたのでした。
そのようなことが何度かありました。
鄭明析牧師が持っていったその木を春まで使わずにいて、分けて切ったのでした。
母が「これが薪なの?」と言いました。
しかし鄭明析牧師は分からず木を取ってきたので、しばらくの間は足りるだろうと思って山に入って行きました。
そのように柴刈りをしても、大きな木であることが分からなかったのです。
無意識の中でしたことでした。
ホンギルドンのようにここでピカッとあそこでピカッとしました。
鄭明析牧師はホンギルドンはいつも意識しました。
ホンギルドンは木の幹に乗って通ったと言ったので、
鄭明析牧師も木に乗ってぶらんこに乗ったのですが、枝が裂けました。
それで「私はホンギルドンではないな」と思いました。
それで一人歩きながら、どれだけ笑ったか分かりません。
木を切って空いたその場所で、いつも背負子を置いて賛美し祈りました。
もっと遠くは少し怖く、あの場所を超えていくと村の人に聞こえてしまうので
そこで休みながら祈って賛美したのでした。
‐1998年4月7日 鄭明析牧師の明け方の御言葉中
감람산 나무를 보십시오.
여기서 볼 때는 손가락 만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아름드리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 위에 나무가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내가 옛날에 산에서 기도하고 오는데 어머니가 와서는
“아버지가 나무 안 해왔다고 야단법석이 났고, 대 난리 통을 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해가 얼마 안 남았지만 얼른 한 짐이라도 해다 주고 산으로 가서 기도해야겠기에
올라가서 낫으로 막 쳐다가 나무를 해서 짊어다 져주고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봄에 어머니를 다시 만났는데 그 나무를 안 때고 그대로 놔두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너무 커서 못 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횟골 쪽으로 힘 좋은 장수가 하나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회통 큰 것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그것은 뒤로 넘어가기에 지기 어렵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 우리가 장사라고 하니까
“그것이 아니다. 이 근방에 나보다 더 큰 장사가 살고 있다.
저 산의 나무를 쪄갔는데 낫으로 다 쳐갔다” 고 하더라구요.
그때 나는 무의식가운데 했던 것입니다.
그 곳은 다른 사람은 나무들이 나무하러 안가는 곳이기에 가봤더니 내가 한 것이 맞았습니다.
가서 보니 아름드리 나무를 낫으로 쳤더라구요.
그래서 지금도 저기에 나무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이 임해서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 나무를 봄까지 못 때고 있기에 쪼개서 땠습니다.
어머니가 “이것이 나무냐?”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모르고 나무 해다 주었으니 한동안 때겠다고 하고서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나무를 하고서도 큰 나무인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무의식 가운데 했던 것입니다.
홍길동 같이 여기서 버뜩 저기서 버뜩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홍길동은 늘 의식했습니다.
홍길동은 나무 줄기 타고 다녔다고 하기에 나도 나무 타고 그네를 뛰었는데
가지가 그냥 찢어지더라구요.
그래서 ‘나는 홍길동이는 아닌가보다’했습니다.
혼자 다니면서 얼마나 웃겼나 모릅니다.
나무로 뻥 뚫린 곳은 그곳에서 늘 지게 받쳐놓고 노래하고 기도하던 곳입니다.
더 멀리는 약간 무섭고, 저곳을 넘어오면 동네 사람이 알아듣고 알기에
거기서 쉬면서 기도하고 노래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