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様に願い求めれば、神様はもっと良くしてあげようと
「違う方法」で望んでいることを成してくださったりもするのに、
これを分からずに無知の中で相克して、祝福に背を向けたりします。
神様に「この土地」が必要だと求めても、
数年後には状況が変わるから、「他の土地」を下さったりもします。
ところが、もらう人が無知で「私は『あれ』を求めたのになぜ『これ』を下さるのか?
『これ』は神様が下さるものではないだろう」と思います。
だから、随時、いつも神様に祈って、話をして、もらったら、使ってみ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うしてこそ、神様が下さったということが分かるようになります。
1980年代の初め、ソウルに小さな教会を建てようとして、四方を回って土地を探し求めました。
しかし、結局は駄目でした。
結局、神様は「違う方法」で下さいました。
もっと良くしてあげようと「神様の方法」で下さいました。
ソウルから500里(※約196km)離れた他の場所、すなわち<月明洞の地>を下さいました。
しかし、月明洞を開発しながらも
「ソウルからあまりに遠くて、ソウルの人たちはここまでどうやって来るだろうか?
水原(スウォン)や天安(チョナン)くらいならまだいいのに……」
と心配しながら開発しました。
その時は教会が一つしかなかったから、他の方法ではそれ以上考えられませんでした。
「時」に従って下さいますが、「自分が考える方法」どおりではなく
「神様の方法」で一番相応しく下さいます。
ところが、ある人は神様と御子が下さっても、自分が求めたとおりにもらえなかったと言って、
感激せず、受け取りません。
神様は下さいますが、「状況と境遇」どおりに下さいます。
また、神様は時になったときに「状況」を変えて、ちょうど季節が近づいてくるように、
1次、2次、3次と漸進的に成すようになさいます。
2014年8月20日 水曜日の御言葉より
※:韓国の1里は約392メートルで、日本の1里の10分の1にあたる。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은 더 좋게 해 주시려고
‘다른 방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기도 하시는데,
이것을 모르고 무지 속에 상극 하다가 축복을 저버립니다.
하나님께 ‘이 땅’이 필요하다고 구했어도,
수년 후에는 상황이 바뀌니 ‘다른 땅’을 주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받는 사람이 무지하여 “나는 ‘저것’을 구했는데 왜‘이것’을 주시나?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겠지.” 합니다.
고로 수시로 늘 하나님께 기도하고 이야기하고, 받았으면 써 봐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980년대 초에 서울에 작은 교회를 지으려고, 사방을 다니며 땅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안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주셨습니다.
더 좋게 해 주시려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셨습니다.
서울에서 500리 떨어진 다른 곳, 곧 <월명동 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월명동을 개발하면서도
‘서울에서 너무 멀어서 서울 사람들은 이곳까지 어떻게 오나?
수원이나 천안 쪽만 돼도 좋겠는데...’
하고 걱정하면서 개발했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하나밖에 없으니까 다른 방법으로는 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때’에 따라서 주시는데, ‘자기가 생각하는 방법’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장 합당하게 주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성자가 주셨어도 자기가 구한 대로 못 받았다고 하며
감격하지 않고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주시되, ‘여건과 처지’대로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때가 되었을 때 ‘여건’을 틀어서 마치 계절이 다가오듯이
1차, 2차, 3차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2014년 8월 20일 수요말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