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明洞の手入れされた松の木には、「基本のいきさつ」があります。
神様と聖霊様と御子は、そのいきさつを通して私たちを悟らせてくださり、
それと同じように働きかけて、私たちを助けてくださいます。
<Y字松>は、数十年間成長する中で、
何人もの人たちと先生に、数百回も切られるところでした。
しかし神様と聖霊様と御子が働きかけられて、
「数百回の死の危機から助けてくださった松の木」で、
「あなたの命もこのように守ってあげた」という意味を持つ松の木です。
<祈りのしるしの松>は、生家の裏山で火事が起こった時に燃えて死んだのですが、
「祈って再び生き返った、祈りのしるしの松」です。
「祈りなさい。あなたも命も、このように生き返る」という意味を持つ松の木です。
<トングレ山の多行松〔タギョウショウ〕>は、
「先生が子供の時から気をもみながら丹精込めて育てた、意味のある松の木」です。
「あなたもこのように丹精込めて育てるから、よく育って輝きなさい」という意味を持つ松の木です。
<野心作の愛松>は、すてきで美しいので、掘ってきたいと思っていました。
その願いどおり、神様は山の所有者の心を感動させて、結局その木を月明洞に移し植えるようになりました。
「愛して掘ってきた松」です。
「すてきで愛らしい新婦たち」を象徴し、「御子が育てた御子の肉」を象徴します。
<大いなる岩の顔の岩の隣りの松>は、「早く行なって生かした松の木」です。
この松が成長する過程で、木の根がどんどん隣の墓に入っていったので、
墓の所有者が切ってしまおうと心に決めた時、
御子の声を聞いてただちに持ち主に連絡をしてから、行って「保護樹」と表示しておきました。
それで、その木があった場所の墓の所有者が、切りませんでした。
木をくれるという約束を早くもらって、移す準備をして、数年後に掘ってく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だからこの松は、「早いこと」を象徴します。「早くしてこそ、死ぬ人も助けられる」という啓示の松の木です。
青い瓦屋根の家の横の北東側の岩の造景(の方)のサッカーゴールの後ろにある、
<門かぶり(のように曲がった形)の朝鮮五葉〔チョウセンゴヨウ〕松>は、
神様が準備しておいてくださった松の木で、「アドナイエレの松」です。
「心配するな。あなたが期待をかけていた松の木が吹雪で抜けて死んでも、もっと良い松がある。
この松を掘って植えなさい」とおっしゃった松の木です。
何かがうまくいかなくて落胆している時、
「心配するな。もっと良いものを準備しておいた」と啓示する松の木です。
<33トン岩の後ろにある巨木の松、「一抱え余りの松」>がもともとあった場所は、「ダム」を造る場所でした。
「そこにそのままにしておいたら地面に埋まって死ぬから、買ってきなさい」とおっしゃって買ってきた松の木で、
遠い「全羅北道〔チョルラプクド〕 鎭安〔チナン〕の龍潭〔ヨンダム〕」から来た松の木です。
「探せばある」という啓示の松の木です。
<芝の聖殿の上の二つの松>は、
村の人たち皆が春から秋まで牛をつないでおいて大事に使っていた松の木だったので、誰も切りませんでした。
「このように、神様に使われる使命者は死なない」という意味を持つ「啓示の松の木」です。
このように、<育てた松の木>それぞれに「基本のいきさつ」がありますが、
「見る人のその時の心情と行い」によって、または「各自の立場と状況と個性」によって
違って見えるし、違う悟りを得ます
2014年8月31日主日の御言葉より
월명동의 가꾼 소나무들은 ‘기본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을 통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와 같이 역사하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Y자 소나무>는 수십 년 동안 크면서,
여러 사람들과 나에게 수백 번 베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이 역사하시어
‘수백 번의 죽음의 위기에서 살려 준 소나무’로서
“네 생명도 이와 같이 지켜 주었다.” 하는 뜻을 가진 소나무입니다.
<기도 표적 소나무>는 생가 뒷동산에 불이 났을 때 타서 죽었는데,
‘기도해서 다시 살아난 기도 표적의 소나무’입니다.
“기도해라. 너도 생명도 이와 같이 살아난다.” 하는 뜻을 가진 소나무입니다.
<동그래산 다복솔>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노심초사하며 정성스럽게 기른 의미 있는 소나무’입니다.
“너도 이와 같이 정성스레 기르니, 잘 자라서 빛나라.” 하는 뜻을 가진 소나무입니다.
<야심작의 사랑솔>은 멋있고 아름다워서 캐 오고 싶어 했습니다.
소원대로 하나님은 산 주인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어 결국 그 나무를 월명동에 옮겨 심게 되었습니다.
‘사랑해서 캐 온 소나무’입니다.
‘멋지고 사랑스러운 신부들’을 상징하고 ‘성자 주님이 기른 성자의 육’을 상징합니다.
<큰바위얼굴바위 옆에 있는 소나무>는 ‘빨리 행해서 살린 소나무’입니다.
이 소나무가 크면서 나무뿌리가 자꾸 옆의 묘로 들어가 묘 주인이 베어 버리려고 마음먹었을 때,
성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즉시 주인에게 연락한 후 가서 ‘보호수’로 표시해 놨습니다.
그래서 그 소나무가 있었던 자리의 묘 주인이 베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주겠다는 약속을 빨리 받아 놓고, 옮길 준비를 하여 몇 년 후에 캐 오게 했습니다.
고로 이 소나무는 ‘빠른 것’을 상징합니다.
“빨리해야 죽을 자도 살린다.” 하는 계시의 소나무입니다.
청기와집 옆 동북편 돌조경 축구 골대 뒤 <가부리 홍솔>은
하나님께서 준비했다가 주신 소나무로서 ‘여호와 이레 솔’입니다.
“걱정 말아라. 네가 기대했던 소나무가 눈보라에 뽑혀 죽었어도 더 좋은 소나무가 있다.
이 소나무를 캐다 심어라.” 하신 소나무입니다.
어떤 일이 안 되어 낙심하고 있을 때
“걱정하지 말아라.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놓았다.” 하고 계시하는 소나무입니다.
<33톤 바위 뒤에 있는 거목 솔 ‘아름드리 소나무’>가 원래 있던 곳은 ‘댐’을 막을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그냥 두면 땅에 묻혀 죽으니 사 와라.” 하여 사 온 소나무로서
멀리 ‘전북 진안 용담’에서 온 소나무입니다.
“찾으면 있다.” 하는 계시의 소나무입니다.
<잔디성전 위의 두 개의 소나무>는
동네 사람들 모두가 봄부터 가을까지 소를 매 놓고 귀히 쓰던 소나무였기에 서로 베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쓰여지는 사명자는 죽지 않는다.” 하는 뜻을 가진 ‘계시의 소나무’입니다.
이같이 <가꾼 소나무>마다 ‘기본 사연’이 있으나,
‘보는 사람의 그때 심정과 행위’에 따라서, 혹은 ‘각자의 입장과 상황과 개성’에 따라서
달리 보이고 달리 깨달아집니다.
2014년 8월 31일 주일말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