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明析牧師がソウルで牧会をしていて、
37歳の時に故郷である月明洞(ウォルミョンドン)にもう一度来てみました。
その当時の月明洞は完全に草ぼうぼうでした。
庭は草が大通りにも生い茂っていたし、家の後ろは全部倒れていました。
その時、鄭明析牧師は神様が月明洞を神様の宮、
自然聖殿として作られるとは思いもよりませんでした。
以前の月明洞はそれなりにうまく建てたと自慢もして行き来しましたが
その後には全部横に置きました。
しかし、だんだん郡でもこのような所はないと言われ、
韓国内でもこのような所はないと言われ、今は世界でも
このような所はないと言われます。
そのように鄭明析牧師と月明洞は共に大きくなっていったのです。
鄭明析牧師は月明洞の開発を人々の認識が少しずつ少しずつ
変わっていくように、(うまくできなかったら)壊してやり直し、
崩れたらやり直すことを数えきれないほど繰り返しました。
月明洞がそのように作られたように、今日(こんにち)の鄭明析牧師も
そのような過程を通して存在しているのです。
人間は練達の中でつくられるものです。
月明洞も数多くの練達の繰り返しの中で作られたから
その貴重さを悟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1998年5月26日 鄭明析牧師の朝の御言葉より
<사람이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명석 목사가 서울에서 목회를 하다가
37살 때 고향인 월명동에 다시 와 봤습니다.
그 때 당시 월명동은 완전히 숲속이었습니다.
마당은 풀이 한길씩 컸었고, 집 뒤는 다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때 정명석 목사는 하나님께서 월명동을 하나님의 궁,
자연성전으로 만들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전 월명동은 나름 잘 지었다고 자랑도 하고 다녔지만
그 후에는 다 내 놓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군에서도 이런 곳이 없다고 하고,
국가에서도 이런 곳이 없다고 하고, 지금은 세계에서도
이런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명석 목사와 월명동은 더불어 큰 것입니다.
정명석 목사는 월명동 개발을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처럼, 때려 부수고 다시 하고,
무너지면 다시 하기를 수없이 반복하였습니다.
월명동이 그렇게 만들어졌듯이 오늘날의 정명석 목사도
그런 과정을 통해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연단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월명동도 수많은 연단의 반복 속에서 만들어졌기에
그 귀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1998년 5월 26일 정명석 목사의 아침말씀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