この場所を99.9%奪われるところでした。
生家も売ってしまうところでした。家を売ったら、おしまいでした。
売って、お金を受け取る直前までいきましたが、家を売ったならば、再びここに戻って来なかったでしょう。
その当時は私もここに戻って来ようとは100万分の1も考えていませんでした。
ボムソクもこの場所を開発する前、この家に帰ってペンキを塗りなさいと言うと、死んだほうがましだと言いました。
あまりに苦労したし、帰っても、前と後ろが山でふさがれていて、みすぼらしかったし、畑はあまりにも削られて砂利畑になっていたし、
土地が痩せて穀物を植えてもどうにもなりませんでした。
それで何の希望もない所だから、なんとかして抜け出そうとしました。
この場所で暮らしていた他の牧師たちはみんな出て行ったのに、私たちが馬鹿みたいに残って暮らす必要があるだろうか、
「あいつら、ソウルに行ってうまくいかなかったから、また戻ってきて暮らしているんだな」と言われるかと思って、
はなから足を踏み入れまいとして、行きませんでした。
しかし今は変わりました。
このようにしておいたから、外部の人たちでさえ墓にしようと墓地を掘っていかないほどです。
今はとても素晴らしいから、墓地も掘らないようにしようと言います。
人が作っておくからそのようになるのです。
鼻をずるずる流すなんでもない人も10-20年間育てれば、
王たちも興味が湧いて探してたずねてきます。
そのように、このような場所も私が続けて磨いたのです。磨いたから、輝く場所になったのです。
この場所を下さったと毎日、「神様、感謝します。このような素晴らしい場所を下さって」と、このようにお祈りしてください。
1996年10月21日 朝の御言葉の中から
이 장소를 99.9% 뺏길뻔 했습니다.
생가도 팔아먹을 뻔했습니다. 집을 팔았으면 끝났습니다.
팔고 돈 받기 직전까지 있었는데 집을 팔았으면 여기에 다시 안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 당시는 나도 여기 들어오리라고는 1/100만 도 생각을 안했었습니다.
범석이도 이곳 개발하기 전에 이 집에 가서 페인트 칠하라고 하니까 죽기보다 싫었다고 했습니다.
하도 고생을 하였고, 오면 앞뒷산이 막혀서 삭막했고, 밭은 하도 갈아 먹어서 자갈밭이 되었고,
메말라서 곡식을 심어도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희망도 없는 곳이라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고 했습니다.
이곳에 살던 다른 목사들은 다 빠져 나갔는데 우리가 바보같이 살아 남아있을 필요가 있겠느냐,
“저놈들 서울갔다가 안되니까 또 들어와서 사네” 할까봐서
아예 발을 붙이지 말자고 하고 안 들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해놓으니까 외부 사람들조차 묘지를 안 파갈 정도입니다.
지금은 너무 좋으니까 묘지도 안파가려고 합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으니까 그렇게 됩니다.
코를 질질 흘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도 10-20년 동안 가꾸면
왕들도 구미를 당기고 쫓아 다닙니다.
그렇듯이 이런 장소도 내가 계속 닦은 것입니다. 닦았으니 빛나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이곳을 주셨다고 맨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곳을 주셔서”라고 기도 하십시오.
1996년 10월 21일 아침말씀 중